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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정보

뮤지컬 <박열>을 통해 본 박열 의사와 그의 독립운동 이야기

by 김잡다 2024. 8. 25.

안녕하세요, 김잡다입니다! 오늘은 뮤지컬 <박열>의 주인공인 '박열'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보려고 합니다. 박열 의사는 뮤지컬 주제로도 다뤘지만, 배우 이제훈이 주연이었던 영화에서도 다뤘습니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다룬 적이 있죠.

 

그만큼 우리에게 정말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일 텐데요. 오늘 박열의 생애와 배경,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 의열투쟁, 그리고 영향과 유산을 통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박열의 생애와 배경

박열은 1902년 2월 3일,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가난했지만, 박열은 어린 시절부터 강한 독립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일제의 잔혹한 통치를 목격하며 민족의식을 키워갔다고 합니다. 문경에서 자란 그는 지역 사회에서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자신의 뜻을 다지게 됩니다.

 

1919년, 박열은 도쿄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요. 도쿄에서 그는 일본의 억압에 저항하는 조선인 유학생들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일본 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사회주의 및 모든 형태의 강제적 권위나 정부에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중시하는 사상을 지지하는 아나키스트 그룹과 연대하게 됩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박열은 일본 사회의 부조리와 억압을 목격하며 더욱 강한 투쟁 의지를 갖게 됩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

박열은 1921년 일본에서 조선의 독립을 목표로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 정책에 반대하는 조선인 유학생과 지식인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비밀결사 '불령사'를 조직합니다. 불령사는 반일 선전물 배포, 시위, 파업 등을 통해 식민통치를 저항하는 다양한 항일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당시 불령사의 핵심 인물이였던 박열은 불령사의 일원들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외치며 여러 폭력적 투쟁을 감행했는데요. 이 때문에 그는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1922년에 박열은 일본인 여성 사회주의자 가네코 후미코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집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념과 목표에 공감하며 연인이자 동지로서 함께 활동을 시작합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과 함께 불령사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병행하였습니다. 그들은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게 됩니다.

 

 

박열의 대역사건과 재판

1923년, 도쿄에서 발생한 관동대지진을 계기로 일본 내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었습니다. 이와중에, 박열은 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결혼식을 계기로 천황 암살을 계획합니다. 이 계획은 1923년 9월에 실행될 계획이었으나, 실행되지 못하였고, 그 후, 1923년에 후미코가 반정부활동으로 인해 먼저 체포당하게 됩니다. 결국 후미코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죠. 그 와중에 1925년에 박열이 '대역 사건'이라고 불리는 암살 계획으로 체포되는데요.

 

박열은 재판 과정에서 일본의 식민통치를 강하게 비판하며,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당당한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조선의 독립운동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사형선고를 받게됩니다. 그러나, 박열은 일본 패전으로 인해 1945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는데요. 다만, 후미코는 1926년 1월 23일에 빠르게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일본 제국 정부는 정치범에 대한 처벌을 빠르게 집행하는 경향이 있었고, 후미코의 사형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미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재판 이후 그는 옥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옥중에서도 조선 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박열은 옥중에서 많은 서신과 글을 남기며, 독립운동의 필요성과 조선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해방을 맞이한 후, 그는 석방되어 조국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박열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불굴의 의지와 희생정신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박열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억하며, 그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