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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정보

뮤지컬 <영웅>의 주인공 '안중근' 의사와 역사적 배경

by 김잡다 2024. 7. 19.

안녕하세요, 김잡다입니다! 오늘은 뮤지컬 <영웅>의 주인공인 안중근 의사와 작품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뮤지컬 제목 그대로 '영웅' 그 자체이신데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는 일본인들에게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피해와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데요. 그 당시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학교에서 배우고, 미디어로 접하고 하였기에 알고는 있지만, 그 당시 사람이 아니면 그 고통이 얼마나 컸고, 힘들었을지는 감히 예상도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게 해 준 안중근 의사를 포함한 많은 독립운동가 분들, 그리고 그 시대를 잘 버텨 지금까지 그 시대의 역사적 인물이 되어주셨고, 되어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리면서, 이 글을 써봅니다.

출처: 네이버

대한제국의 위기

1900년대 초반, 지금의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으로 불리던 때였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우리 대한제국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었는데요.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전쟁 당시, 일본은 군사력, 경제력, 외교적 전략 등이 청나라와 러시아보다 우세했던 덕분에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일본은 더욱더 강해졌고, 특히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905년에는 을사늑약(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사실상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대한제국의 주권은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국민들은 깊은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출생과 성장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교적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났고, 독립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가정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일본의 침략에 맞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여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이를 통해 점점 더 강한 민족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이러한 배경은 그가 훗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게 된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동의단지회와 하얼빈 의거

1909년, 안중근 의사는 동지들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조직하여 일본의 침략에 저항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맹세와 함께, 구체적인 독립운동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러한 활동 중,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사살하게 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제국의 초대 내각총리대신으로, 대한제국 병합을 주도한 인물이었는데요. 그는 조선의 병합을 계획하고 실행한 주요 인물이었기 때문에,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재판과 유언

안중근 의사는 체포된 후 재판을 받았고,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며, 자신의 행동이 단순한 살인이 아닌,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계획의 주요 인물이라고 보았고,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고 설명하며, 정의로운 행동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는 사형 전, 유언을 남겼는데요. "나의 피로 만든 나라가 가난하고 불행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라며 자신의 희생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독립과 안정을 찾고, 행복해지길 바랐습니다. 그의 재판은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으며, 그의 유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뮤지컬 <영웅>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안중근 의사의 용기와 신념을 나타냅니다. 이 작품은 자유와 독립, 정의와 헌신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여러분도 이 뮤지컬을 통해 감동적인 역사적 이야기를 직접 체험해 보시기를 권합니다.